(충남도민일보(세종시사뉴스) 이주상 기자) “이 책은 우리 아저씨, 눈물이 담겨있는 책입니다. 제가 집에다 보관하믄 뭣하냐. 여러 사람이 보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싶어 시청에 기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이 책 못 읽어봤습니다. 뭔 말이 써져있을까 생각을 하면 너무나 가슴이 두근두근해서 못 읽어보고. 아저씨가 ‘읽어줄 것이니 들어보소’ 그래요. 아저씨가 눈물을 떨구면서 읽어준 책입니다. 시장님께서 이 책을 길이 보관하시고, 오래도록 이 책을 많은 분들이 보시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가 눈물과 추억이 묻은 책 ‘소년이 온다’를 광주시에 기증했다. 13일 오후 전일빌딩245 1층에 마련된 ‘소년이 온다’ 미니북카페 개소식에서다.
광주광역시는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한강 작가 저서를 비롯한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와 국내 유명 문인들의 작품 100여권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임시 미니북카페를 마련, 13일 개소식을 했다. 북카페 운영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실존 인물인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가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김 씨는 이날 문재학 열사의 부친 고 문건양 씨가 생전에 아들을 기리며 읽다가 흘린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소년이 온다’ 소설책을 광주시에 기증했다.
2022년 세상을 떠난 문건양 씨는 2014년 책이 출판되자 수십권을 구매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이날 기증한 책에는 문건양 씨가 빨간색으로 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고 ‘동호’라는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고 ‘문재학’이라 쓰면서 아들을 그리워한 흔적이 오롯이 남아있다.
이날 김길자 씨는 “문재학, 아들의 이름 석자를 기억해 달라”는 작은 바람을 전했다.
김 씨는 또한 책 기증에 앞서 5·18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한강 작가에 대한 고마움과, 영원한 소년으로 남은 아들 문재학 열사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김 씨는 “저는 말하기 전에 눈물이 먼저 나와서 말을 못하겄어요”라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김 씨는 “우리 재학이를 데리러 갔어요. 아들이 ‘엄마 친구가 죽었는디 나만 가믄 쓰겄냐’고 하대요. 그래서 ‘네 말이 맞다’하고 돌아왔어요. 그 뒤로 우리 재학이, 이름 석자 여러분들에게 안 잊어불게 할라고 투쟁하면서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저녁밥을 먹다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는데 ‘설마’ 했어요. 진실로 우리 재학이를 소설에 써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여러분들도 후배들, 자식들도 후세 대대로 5·18을 잊지 않게 선생님들 잘 가르쳐주셔요”라고 전했다.
광주시는 기증받은 ‘소년이 온다’ 소설책 사본을 광주시 공공도서관에 전시해 시민들이 함께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책을 보면 아버님의 눈물방울이 떨어져 잉크가 번진 부분도 있고, 아들의 이름을 적어둔 부분도 보인다”며 “방송을 통해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담긴 책이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됐고, 어머님께 조심스레 기증 부탁을 드렸다. 어렵게 책을 기증하신 만큼 어머님의 바람대로 많은 사람들이 열사와 5·18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재학 열사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현재 광주동성고) 1학년으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옛 전남도청에서 사상자들을 돌보고 유족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어머니가 아들을 데려가기 위해 찾아왔으나 오히려 문재학 열사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며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5월26일 계엄군이 광주로 재진입한다는 소식에도 끝까지 도청에 남아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으며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총격에 산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