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도민일보 = 정연호 기자] 소강석 목사는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19 전염병 위기 속에서 대면 예배와 병행한 온라인 화상 예배로, 코로나 19초기 부터, 예배를 성공적으로 안착, 위기관리 능력 있는 교회로 인정. 정부와 협력을 이끌어 보다 나은 미래를 열어갈 것 같다.
특히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한국교회 연합기관 통합을 위해 준비해, 그 대안을 말하는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를, 이성용 회장이 직접 대담해서 기사화했다.
이어령 교수님의 말처럼, “우리는 END가 아니라 스토리와 다양한 간증을 머금은 꽃봉오리 하나를 피워야 합니다. 코로나의 폐허 위에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라는 꽃봉오리 하나를 피워내는 것도 더 아름다운 저항이 아닐까요” - 소강석 목사(한국교회 총연합회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한국교회 총연합회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은 코로나 19 초기부터 지금까지 대면 예배와 온라인 예배를 하면서, 코로나 19 전염병 위기 속에서도 철저한 방역 전쟁을 하면서 성공적인 안착을 해 왔다. 그러면서 기독교의 철저한 방역의 본을 보여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강석 목사에 대해 일부에선 정부와 너무 밀접하다며, 대면 예배 말고 정부와 싸우라 하는 이도 있다.
여기에 대해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에게 들어 보았다. 소강석 목사는 “제가 쓴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실. 코로나 이후 동선을 잃었다/ 아침마다 핸드폰에 뜨는 확진자 문자/ 누군가의 동선/ 매일 우리의 식탁에는/ 불안과 우울, 의심과 회의가 오른다/ 혼자 있고 싶은 외로움마저 통제하는/ 낭만과 방랑의 소멸 사회/ 밤 11시 산에 오른다/ 그 누구도 나의 동선을 추적할 수 없는/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 소강석 목사는 사실 외로운 싸움을 해 온 것이다. 예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면서, 방역수칙을 누구보다도 더 잘 지키려 하면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목사는 말한다.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이 시는 코로나로 인해 일상의 자유와 관계마저 통제받아야 하는 시대를 향한 정서적 저항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끊임없이 방역본부와 소통하고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정부에 협조적인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교단에 한 어른이 계시는데 이 분이 걸핏하면 “소 총회장 뭐 하느냐, 정부와 좀 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어르신, 제가 싸울 테니까 어르신이 대신 가서 협상하세요. 그렇게 해 주시면 제가 당장 피켓 들고 나가겠습니다.” 그랬더니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나도 화가 나서 그런 거지”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힘들게 기독교와 관련해 해 온 사역을 설명했더니 나중에는 오히려 그분이 제 팬이 되셨습니다”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목사는 그 어른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 받았다며, 감동적인 언어로 말을 이어가면서 “그 어른이, 그 후에는 다른 사람이 저를 공격하면 오히려 이제는 소강석 총회장이 지금까지 한국교회 공적 사역을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해 왔는데, 당신들이 그런 고충과 노력을 알기나 하느냐”고 대변을 하시는 것입니다.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목사는 말한다. “사실. 교회에서 은혜롭게 성도들과 함께 대면 예배 잘 드리고 싶지 않은 목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니, 작금의 코로나 상황에서 누군들 저항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예배 잘 드리고, 방역 잘하고 교인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건강하도록 잘 지켜 드리고.. 최근에 와서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 하지요. 저는 그런 면에서 볼 때에, 저항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간디의 무저항 운동도 있고,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묵묵히 골고다를 향해 가실 때, 그 마음이 어떠하셨겠습니까? 아마 찢어지는 아픔을 않고 가셨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만주나 상해로 가서, 직접 몸을 바쳐 독립투사가 되기도 하고, 윤동주 같은 시인은 심미적 저항시를 썼습니다. 저 역시 합동 총회장이나 한교총 대표회장이 아니면 모르겠지만 어차피 방역본부와 대화 채널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잘못된 방역대책에 반대하고 저항하면서도 계속 소통하고 합의점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목사는 그 동안 노력해 온 과정을 말하며, “사실. 이번 4차 대유행만 아니었다면 거의 50% 가까이 한국교회의 예배를 회복할 수 있는 협상의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일 1800명, 1900여명에 달하는 확진자들이 나오면서 무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럴지라도 저는 제 위치를 지키면서 교회의 내적, 외적 결집력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생산적 저항, 전략적 저항, 미래적 저항의 길을 택한 겁니다”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목사는 이어서 말한다. “저는 방역 4단계로 예배 인원이 20명 이내로 제한되었을 때, 어떻게 하였냐? 저는 바로 그 주부터 예배를 총 7번 드렸습니다. 이때마다 온 성도들은 교회의 방침에 협조하였고, 예배마다 1000여명의 성도들이 화상줌과 라이브 톡으로 참석하였고, 유튜브는 평균 4천~5천여 명의 성도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예배를 제가 직접 인도했습니다” 라며, 그 힘든 과정을 말한다.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목사는 교단장으로서, 단체장으로서 정부와 여러협상을 하면서 조용히 묵묵히 온 성도들과 코로나와의 전쟁을 싸워 온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유튜브로 예배를 송출하면 두세 번만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화상줌을 통해서 한 성도라도 더 ‘페이스 투 페이스’를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4주 연속 특별새벽기도회와 특별저녁기도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코로나의 심각성과 위기감을 알기 때문에 온 성도들을 더 강력하게 묶고 거룩한 부족공동체, 초연결 슈퍼 처치를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제가 작년에 핸드폰 문자를 확인 못한 것이 1600개 정도 됩니다. 작년 연말에 핸드폰을 교체해서 올해 1월부터 온 문자 중에 읽지 못한 것이 900개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 읽어봤는데 불특정 다수로 부터 오는 문자는 거의 보지 않습니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문자를 보면 분노가 생기고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평정심을 잃고 돌아오지 못할 과격한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익스트림하게 나가는 사람은 잠시의 포퓰리즘은 일으킬 수 있지만 시대를 바꾸거나 시대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목사는 “저는 스스로 자제하고 컨트롤 하며, 제 위치에서 저항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산토기 잡으려다 집토끼를 잃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의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4주 연속 7번의 주일예배와 특별새벽집회, 저녁 집회를 인도해 왔습니다.
이것은 저와 우리 교회가 보여준 생산적, 전략적, 미래적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정부의 일방적 방역대책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항을 하더라도 생산적, 전략적, 미래적 저항을 할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나중에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면 어느 교회가 가장 회복 탄력성을 가지고 부흥하며 시대를 선도하게 될지 역사가 말 해 줄 것입니다.
결코 아군끼리 서로 총질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이어령 교수님의 말처럼, 우리는 END가 아니라 스토리와 다양한 간증을 머금은 꽃봉오리 하나를 피워야 합니다. 코로나의 폐허 위에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라는 꽃봉오리 하나를 피워내는 것도 더 아름다운 저항이 아닐까요.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목사는 계속해서 “사실. 저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의 개척 시절은 정말 처절했습니다. 개척멤버 한 명 없이, 맨손, 맨몸으로 맨땅에서 시작하여 오직 불타는 소명감 하나로 온몸을 바쳐 영혼 구원을 위해 뛰었습니다. 가락동 23평 지하상가에서 교회를 시작하여 교인 한 명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제가 교회 전도지를 돌리기 위해 새벽에 신문 배달까지 하며 뛰고 또 뛰었겠습니까?
그야말로 처절한 맨발의 소명자의 절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우리 교회 바로 앞 사거리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버스가 와서 성도들을 이곳에 와서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한 명이라도 전도하기 위해 밤낮으로 몸부림치고 있는데 대형교회 버스가 가락동까지 와서 사람들을 다 데려가 버리니, 너무 허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저는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왜냐면 제가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무등산기도원에서 조용기 목사님을 마음속 아이돌로 삼고 기도하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버스를 향하여 축복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꾸었습니다.
또 분당 정자동으로 왔을 때는 교회 바로 앞에 명성교회 버스가 와서 성도들을 가득 채워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단 한 마디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명성교회가 더 부흥하여 한국교회와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조용기 목사님에 대한 부정적 루머와 김삼환 목사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마음에 새겨놓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모습만 보며, 저도 귀하게 쓰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어느새 한 시대를 위해서 쓰임 받는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이다’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목사는 말한다 “요즘 ‘인포데믹 (infodemic)’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보 (information)’와 ‘전염병 (epidemic)’을 조합하여 만든 신조어인데, 잘못된 정보가 미디어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가 사회적 혼란을 야기 시키는 ‘정보 전염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일 나쁜 사람은 거짓 정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의 잘못된 정보에 전염되어서 퍼 나르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고요.
이분들은 의식구조가 선택적 지각이나 확증편향에 빠져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합니다. 자기만 교회를 사랑하는 것처럼, 정의를 외치지만 사람들 사이에 미움과 증오, 분노와 파괴를 증폭시킵니다”.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목사는 이어서 우리는 지금 우리 죄를 위해 이 당에 오셔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라며,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사랑과 용서를 증폭시키고 화해와 평화를 확장 시키는 종교입니다. 아니, 사랑과 정의가 입 맞추게 하는 종교지요. 그런데 왜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달리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고 분열과 파괴에 앞장서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보면, 우군끼리도 조소와 비난의 총질을 끊임없이 합니다. 그것이 한국교회의 이미지에 상처를 입히는 일인데 말입니다. 사실. 저도 누구 못지않게 정의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길을 가다가도 싸우는 걸 보면 끝까지 말리고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몇 계단만 올라가도 온도가 다르고, 공기가 다르고 풍경이 다릅니다. 하물며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면 바람의, 온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사방 전체가 다 보이게 되지요”.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목사는 “우리가 서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사랑의 윤리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을 하지 말라. 우리가 비판을 하면 그 비판으로 다시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려고 하지 말고 우리 눈 속에서 있는 들보부터 빼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미움과 증오, 파괴를 멈추고 사랑과 용서, 섬김으로 세움의 역사를 일으키신 분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가르침이고 진정한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소강석(한교총 대표회장, 예장합동 총회장)목사는 말한다. “지금 우리는 남을 비판하고 총질하는 ‘냉장고 언어 ’를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남의 가슴도 따뜻하게 하는 ‘화덕 언어 ’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세움입니다.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데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방법이 다르다고 서로 증오하고 분노를 부추겨서는 안 됩니다. 파괴에 앞장서서도 안 됩니다. 사랑과 섬김의 자세, 화덕의 언어로 서로가 서로를 세워가야지요. 비록 우리의 삶의 터전이 사막 같을지라도, 우리가 꽃밭여행자만 된다면 사막을 푸른 숲으로,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대는 ‘사랑의 증폭자 ’ ‘화해의 확장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