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라는 피아노,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가

  • 등록 2025.12.15 16: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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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민일보 =금산) 김천호기자/ 19세기 낭만파 음악의 전성기는 ‘피아노의 대중화’와 궤를 같이한다. 산업혁명 이후 피아노가 대량 생산되어 가정에 보급되자, 소수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음악은 대중의 것이 되었다. 수많은 아마추어 연주자가 등장했고, 그 저변 위에서 쇼팽과 리스트 같은 거장들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도구의 보급이 예술과 문화의 폭발적 성장을 이끈 것이다.

 

21세기, 우리는 또 다른 ‘피아노’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의 등장은 전문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코딩을 시도할 수 있는 세상을 열었다. 바야흐로 ‘AI의 대중화’ 시대다. 그러나 환호 속에 가려진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 강력한 도구를 함께 연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기술의 발전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리운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정보 취약계층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조차 망설이는 노년층,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장애인, 그리고 비싼 유료 AI 서비스를 구독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AI 혁명은 또 다른 소외의 벽이 될 수 있다. ‘편리함’이 누군가에게는 ‘배제’가 되는 순간, 기술은 진보가 아니라 격차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는 곧 권력이자 재산이다. 과거에는 토지와 공장이 부의 원천이었다면, 이제는 데이터를 가공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기회를 결정한다.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들은 업무 효율을 비약적으로 높여 더 많은 선택지를 얻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일상과 노동의 현장에서 밀려날 위험에 처한다. 정보 격차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존의 격차로 번지는 이유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문해력’이다. 우리는 지금 정보의 결핍이 아니라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AI는 매초 무한한 정보를 쏟아내지만, 그 결과물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 편향, 맥락의 누락이 섞일 수 있다. 이제 필요한 능력은 정보를 단순히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내놓은 답의 근거를 확인하고, 진위를 가려내며, 상황에 맞게 해석해 책임 있게 사용하는 힘이다. ‘AI를 쓰는 기술’보다 먼저 ‘AI를 검증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다.

 

따라서 우리의 준비는 ‘기술 교육’을 넘어 ‘시민 교육’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취약계층에게는 공공도서관·복지관·평생교육기관을 중심으로 한 실습형 교육과 기기·서비스 접근 지원이 필요하다. 공공서비스는 디지털 전환과 함께 대면 창구를 남겨 누구도 행정에서 배제되지 않게 해야 한다.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는 음성 안내, 자막, 쉬운 화면 설계 같은 기준도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일반 시민에게는 정보 검증,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편향 이해를 포함한 ‘AI 리터러시’ 교육이 시급하다.

 

낭만파 시대, 피아노가 거실로 들어왔을 때 누군가는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덩치 큰 가구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AI라는 거대한 피아노가 우리 앞에 놓였다. 이 도구가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되지 않고,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되려면 기술의 속도만큼이나 사회적 안전망과 교육이라는 악보를 꼼꼼히 갖춰야 한다. AI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갈 수 있게 만드는 것—그것이 ‘준비’다.

관리자 skys2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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